[나침반] 교육급식의 새 패러다임 ‘자율선택급식’
[나침반] 교육급식의 새 패러다임 ‘자율선택급식’
  • 신지희 영양교사
  • 승인 2024.03.2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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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희 성남외국어고등학교 영양교사

 Column 나침반  '나침반'은 방향을 가리키도록 제작된 도구로, 배나 비행기 진로 그리고 목적지를 찾는 사람에겐 길의 방향을 잡아주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Column 나침반'은 급식 분야에서 누군가의 건강한 한 끼를 고민하는 분들과 맑은 지혜를 나누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신지희 영양교사

‘학생들의 건강과 기호도를 고려한 학교급식’. 오랫동안 학교급식에 몸담아 온 필자에게는 남과 북으로 각각 달리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라는 것만큼 힘들게 느껴진다. 

이른바 ‘건강한 음식’은 학생들이 좋아하지 않고, 요즘 학생들의 기호는 건강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영양소 균형을 맞추면서 건강과 기호도를 함께 고려한 학교급식은 참으로 쉽지 않다. 

오전 내내 씻어 깎은 단감이나 참외를 배식해도 받아 간 학생들 대부분이 손도 대지 않고 그대로 잔반통으로 넣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다. 수고하신 조리 실무사님들께 죄송한데다 이는 결국 환경을 해치는 일 그리고 예산이 낭비되는 일이다. 

환경 오염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지금, 학교급식으로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들을 계속 방관해도 우리 지구의 건강은 안녕할까? 

그렇다면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건강인가’ 아니면 ‘기호도인가’. 건강을 포기하자니 영양교사와 영양사로서 존재 의미를 잃고, 기호도를 포기하자니 민원이 쇄도해 영양교사와 영양사라는 직책을 수행할 수가 없다. 이러한 상황은 현재 진행형으로 해결되지 못한 오래된 숙제였다. 

또 다른 민원도 있다. 아침을 안 먹고 등교하다 보니 배고파 많이 먹고 싶은데 조리사님이 밥을 조금만 준다는 것이다. 즉 밥 정도는 스스로 양을 정하면 안 되냐는 의견도 나온다.

영양교사와 영양사들은 억울하다. 교육부는 고등학생에게 제공해야 할 기본 열량을 권장하는데 이 열량은 남녀 학생 모두에게 동등하다. 하지만 익히 알다시피 남학생과 여학생의 활동량과 섭취량은 다를 수밖에 없어 당연히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정량을 배식해도 남학생은 부족하고, 여학생은 많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일. 

이런 와중에 2021년 4월 처음으로 ‘자율선택급식’을 시작하면서 이 해묵은 숙제가 해결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학생들이 급식을 자율적으로 선택하게 되면서 단순히 조리사가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음식’이 아닌 이제 ‘내가 선택한 나의 음식’이 되었다. 

여기에 영양교사와 영양사들도 학생들의 불균형 식습관으로 가해지는 무형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됐다. 이렇듯 자율선택급식은 학생들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어 ‘귤 한 개가 아닌 반 개만’ 배식받고 싶은 학생이 아침을 부실하게 먹어 2개를 배식받고 싶은 학생에게 양보할 수 있는 미덕이 있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자율선택급식이 ‘우리 학교급식의 미래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교육이 된 학교급식이 자율선택급식을 통해 학생들에게 더 효과적으로 ‘교육적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내가 좀 덜 먹고 싶으면 덜 먹을 수 있는 ‘자율’과 더 먹고 싶으면 더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여기에 식생활교육까지 더하면 건강과 기호도까지 모두 잡는 급식이 되지 않을까. 특히 학생들에게는 스스로 선택한 음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왜 균형 잡힌 식단이 필요한지를 전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교육급식의 가치’다.

4년 전 성남외국어고등학교로 발령받은 첫날 학부모님들의 말씀이 떠오른다. 당시 학부모님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신선한 자연식품을 자주 먹게 해 주시고, 급식으로 행복하게 해 주세요”라고 당부했다. 

우리가 시행하는 자율선택급식이 정착되고, 확대되며, 학생들에 대한 식생활교육이 이뤄진다면 학부모님들의 말씀이 어느 순간 이뤄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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